췌장암, 이젠 치료해 볼 만한 난치병입니다

입력
수정2021.04.20. 오전 9:07
기사원문
권대익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전문의에게서 듣는다] 이종찬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종찬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암 중의 암으로 불렸던 췌장암이 최근 새로운 치료법과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면서 불치병이 아니라 치료해 볼 만한 병이 되고 있다"고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몸속 위장 뒤에 위치해 소화 효소와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이 췌장이다. 췌장의 ‘췌(膵)’자는 네덜란드어 kiler-bidde(분비샘 덩어리)를 18세기 일본에서 살(肉)+덩어리(萃)라는 의미의 ‘췌(膵)’라는 신조어로 번역하면서 우리나라로 전해진 말이다. 그리스 시대 이후 췌장은 위장의 뒤를 받쳐주는 살덩어리 정도로 인식됐다. 근ㆍ현대 이후 의학이 발전하면서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 체내 혈당과 대사를 조절하는 중요한 기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췌장 내에서도 악성 종양(암)이 생길 수 있다. 췌장 조직은 부피를 기준으로 할 때 소화샘 세포 80%, 췌관 세포 15%, 내분비 세포 5% 정도로 이루어졌다. 췌장암 가운데 90% 이상이 췌관 세포에서 기원한다. 여기에 생긴 암이 ‘악성 췌장 선암’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췌장암이다. 췌장암은 대부분 늦게 발견되면서 예후(豫後)가 매우 좋지 않다. 5년 생존율이 12.6%로 10대 암 가운데 꼴찌다. 다행히 수술이 가능한 1~2기에 발견한다면 30개월 이상 생존이 가능하다.

‘췌장암 전문가’ 이종찬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췌장암을 제대로 치료하는 방법은 조기 진단 및 적절한 다학제(多學際) 치료뿐”이라며 “특별히 위나 담석 질환이 없더라도 등ㆍ배 통증, 성인기 당뇨병, 황달, 급격한 체중 감소 등이 나타난다면 췌장암을 한 번쯤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췌장암 생존율과 예후가 좋지 않은 이유는.

“췌장암은 ‘암 중의 암’이라 불릴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다. 조기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기 때문이다. 각종 건강검진으로 조기 발견이 흔해진 다른 암과 달리 췌장암은 첫 진단 시 다른 장기로 멀리 퍼져 나간 원격 전이가 있는 4기 췌장암이 50%를 넘는다. 전이되지 않아도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암(주변 조직과 혈관까지 침범한 암, 대략 3기암)도 35%나 된다. 다시 말해서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은 15%가량이라는 뜻이다. 또한 췌장암은 미세 전이나 주변 장기로 쉽게 침범하는 특징이 있다. 항암 치료에 쉽게 내성을 가지며 표적 치료나 면역 치료에서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수술 후에도 흔히 재발한다.”

-그래도 이전보다 생존율이 높아졌는데.

“췌장암은 다른 암보다 사망률이 높고 완치율은 상당히 낮지만, 우리나라는 미국ㆍ영국ㆍ일본 등보다 치료 성적이 뛰어나고 계속 향상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내시경 같은 검사법이 없어 건강검진으로 발견하기는 쉽지 않지만, 당뇨병ㆍ만성췌장염ㆍ가족력ㆍ췌장 낭성 종양이 있는 고위험군은 자주 검사하고 있어 조기 진단하는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 또한 효과적인 항암제 개발, 수술 전후 적극적인 항암 치료법 발전 등으로 생존율이 호전되고 있다.

이미 암이 진행돼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가 어려울 때 시행하는 복합 항암 치료제의 병용 요법이 소개되면서 생존 기간이 길어진 부분도 있다. 일례로 2011년 폴피리녹스(FOLFIRINOXㆍ이리노테칸 5-플루오라실 류코보린 옥살리플라틴 등 4가지 항암 화학 약제 병용) 요법이나 2013년 젬시타민 아브락산 병합 요법(gemcitabine with nab-paclitaxel) 등은 췌장암 치료 성적을 크게 개선했다.

이전에는 항암 치료를 잘 받더라도 중간 생존율이 6개월 정도에 불과했던 전이성 췌장암 생존율이 이제는 1년 전후로 향상됐다. 이처럼 수술 전후 항암 치료법이나 수술법 발전으로 불치병에 가까웠던 췌장암이 ‘치료해 볼 만한 난치병’이 되고 있다. 특히 유전체나 종양 내 미세 환경 연구 등을 통해 치료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외로 장기 생존하는 환자도 있는데.

“장기 생존하는 췌장암 환자가 점점 늘면서 중요한 연구 주제로 관심을 받고 있다. 2010년 전후 연구에서는 ‘알고 보니 췌장암 환자의 80%는 전신으로 격하게 퍼지는 성향이 있는 반면, 20%는 별다른 전이 없이 그 자리에서만 성장 하더라’는 보고도 있었다. 이에 따라 후자에 해당하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국소 치료를 병행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특정 유전자 변이에 따른 표적 치료법도 한몫하고 있다. 췌장암 환자의 5~15%는 유전성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중에서도 잘 알려진 BRCA 유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BRC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여러 가지 암이 생긴다. 특히 유방암ㆍ난소암ㆍ췌장암은 이 BRCA 유전자 변이와 관련이 깊다. 이에 BRCA 돌연변이를 가진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올라파립(Olaparib)을 이용한 표적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2019년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유전자 특성과 항암 치료제 특성이 잘 맞아떨어지면 장기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어 표적 항암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환자가 더 많아질 것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췌장암 증상이 있다면.

“안타깝게도 초기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증상은 없다. 그나마 췌장 머리 쪽에 종양이 발생하면 조기에 담도 폐쇄로 인한 황달이 나타날 수 있다. 배나 등 쪽 통증, 급격한 체중 감소, 갑작스러운 당뇨병 발병 등도 생길 수 있다. 당뇨병 환자라면 혈당 조절이 갑자기 잘 되지 않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배와 명치 부위, 허리, 등 쪽에 통증이 생기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불량ㆍ식욕부진ㆍ급격한 체중 감소가 생기면 한 번쯤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췌장암 위험 요인을 꼽자면.

“당뇨병을 비롯해 음주로 인한 만성췌장염, 흡연 등이 있다. 가족력이 있어도 발병률이 높아지고, 췌장에 낭성 종양이 있어도 발병률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위험 요인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진단 후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병이 있는 반면, 아무리 노력해도 생물학적인 악화라든가 재발 여부가 결정된 병도 있다. 안타깝게도 췌장암은 후자에 가깝다. 하지만 췌장암에 걸렸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췌장암 치료를 위해 무언가 대단하고 ‘신묘한' 것을 찾기 위해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췌장암 치료를 위해 특별한 뭔가를 하기보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건강 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충분한 영양 공급, 규칙적인 생활, 금연, 금주, 충분한 수면과 휴식, 긍정적인 사고, 기름진 음식 피하기, 가족과 여가 시간 보내기, 의료진을 믿고 협력적으로 치료하기 등 실천 가능한 습관이 ‘보약과 명약’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췌장암 치료의 핵심은 수술과 함께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포함한 복합적 치료를 얼마나 받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의료진과 치료 과정 및 예후를 충분히 상의하면서 본인에게 적합한 치료를 성실히 받으면 췌장암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화해] 남편이 정한 '며느리 도리' 지켜야 하나
[제로웨이스트] 코팅 종이 재활용되는데 그냥 버려라?
한국일보닷컴 바로가기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