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엘앤에프 美배터리 진출 불허…"기술유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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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9.14. 오후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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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양극재 중견기업
정부, 기술보호 이유로 불허


◆ 美진출 막힌 배터리소재 ◆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제조하는 중견기업이자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3위인 엘앤에프에 미국 양극재 공장 건설을 불허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배터리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통과되면서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앞다퉈 북미 진출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 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14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40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는 엘앤에프의 미국 공장 건설을 심사한 뒤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첨단 기술인 양극재 제조 기술에 대한 보안 조치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업기술보호법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 핵심 기술을 수출하거나 관련 회사가 인수·합병(M&A) 대상이 되면 산업부 장관에게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 예산으로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은 경우에도 장관 승인이 있어야 해외에 공장을 지을 수 있다.

최성준 산업부 기술안보과장은 "해당 기술이 국비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보호, 유출 방지 조치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미국의 IRA 시행으로 미국에서 전기차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내년 50%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미국산 부품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 때문에 양극재는 물론 전지박, 양극박 등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미국 진출을 노려왔는데 산업부의 기술보호 심사로 제동이 걸린 것이다. 특히 소재 업체 중 상당수는 기술 보안 측면에서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이라 이번 결정으로 미국 진출이 상당 시간 지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단독] "핵심기술 유출 우려" 정부 급제동…美진출 노리던 기업들 긴장

정부, 엘앤에프 美 양극재공장 건설 불허

니켈 함량 80% 이상 양극재
中도 따라오지못한 핵심기술
에코프로비엠·코스모신소재
美공장 재검토할지 여부 주목

2차전지 R&D에 예산 준 정부
기술심사 문턱 한층 높아질듯

불허 사유로 알려진 보안 미흡
지식재산권·인력관리 요구돼

산업통상자원부가 14일 엘앤에프의 미국 양극재 공장 건설 계획을 전격적으로 불허한 것은 국내 핵심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현재 국내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것은 총 73개다. 이 가운데 배터리 관련 기술은 △전기차용 중대형 리튬 2차전지 △하이니켈 양극재 △500㎸급 이상 전력케이블 시스템 △초고성능 전극 또는 전고체전지 관련 기술 등이다.

특히 하이니켈 양극재는 아직까지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아 중국의 맹추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업체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로 꼽힌다. 에너지 밀도를 결정하는 니켈 함량을 80~90%까지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필수적인 소재다.

최근 고급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양극재 업체 관계자는 "현재 니켈 비중이 90%인 하이니켈 양극재를 생산하는 곳은 엘앤에프가 유일하다"며 "국내 소재 업체 중 처음으로 테슬라에 직접 하이니켈 양극재를 공급할 만큼 기술력과 품질력은 검증을 마친 곳"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엘앤에프의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국외에서 하이니켈 양극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 다른 업체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국내 1위 양극재 제조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은 미국 조지아주를 생산지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에코프로비엠 관계자는 "북미 진출을 위해 내년 정부 승인을 목표로 외부 로펌과 협력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발 주자인 코스모신소재 역시 지난해 니켈 함량이 80% 이상인 양극재 개발을 마치고 현재 국내 배터리사와 함께 북미 진출을 논의하고 있다. 한 배터리 소재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 3사와 달리 중견·중소기업이 주축인 배터리 소재 업체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기술 보안 수준을 갖춰야 정부 눈높이에 맞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호소했다.

다만 엘앤에프의 미국 공장 건설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최성준 산업부 기술안보과장은 "엘앤에프가 이번에 불승인이 난 부분을 보완해 다시 승인을 신청하면 위원회를 열어 수출 가능 여부를 다시 심사할 것"이라고 했다. 수출 가능 여부를 심사하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통상 2~3개월마다 열리며 재신청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도 기술 심사에 대해 엄격해진 정부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 2차전지 산업은 1997년부터 민관 공동으로 기술 개발에 주력하면서 현재 위상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차세대 소형 2차전지 중기거점 개발 사업'을 통해 2차전지 관련 부품·소재·장비 사업화에 대거 성공했다. 이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일류소재(WPM)와 녹색산업 선도형 2차전지 사업 등 산업부 주요 기술 개발 사업이 이어졌고, 작년부터는 차세대 2차전지 연구개발(R&D) 지원 사업 등에 총 3700억원을 투입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처럼 중장기 투자를 거쳐 세계적으로도 내로라하는 경쟁력을 갖춘 국내 2차전지 부품·소재 업체들이 줄줄이 해외에서 합작법인(JV) 설립에 나서는 데 대해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배터리 소재 업체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의 R&D 자금이 대거 투입돼 확보한 기술을 들고 기업들이 미국 투자에 나서는 현상에 대해 기술 유출과 일자리 문제 등을 이유로 껄끄럽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엘앤에프의 미국 공장 건설 불허에 관해서는 심사위원회 내부에서도 원인 분석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산업부는 이번 불승인 건의 경우 핵심 기술의 수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부실한 보안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심사에 참여한 한 민간위원은 "엘앤에프 수출 건은 워낙 핵심 기술이라 수출 승인이 나지 않은 측면도 있다"며 "현지 진출 시 100%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기술 보호장치가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JV 설립 자체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보안 강화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할 전망이다. 최경철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국가핵심기술에 대해서는 수출 승인을 내주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기업들도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식재산권(IP)뿐 아니라 인력 유출 방지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산업부의 조치가 한국산 전기차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간접적으로 대응한 조치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다른 배터리 관련 기업의 미국 진출은 승인된 사례도 있다"며 "IRA와는 전혀 무관한 기술 보호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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