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요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혹한과 혹서는 사람들의 에너지 사용량을 증가시켰던 것 같다. 지난해 주거 및 상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은 2021년보다 각각 1.9%, 4.4% 늘었다. 이 수치는 결국 사람들이 머무는 집, 상가, 사무실 등의 공간이 너무 덥거나 추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아끼고 탄소 배출도 줄이려면 건물 자체가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아도 쾌적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단열이 잘되는 집, 소위 말해 건물에너지 효율등급이 좋은 건물이 여름, 겨울에도 실내 온도가 비교적 일정해서 지내기 편하다. 외기온도와 내기온도의 차이를 줄여주면 결로 현상이 덜 생기기 때문에 곰팡이도 없이 뽀송뽀송하다. 각자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 자체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어야 더 많은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이를 요즘은 ‘내재탄소(embodied carb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보통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내재탄소, 사용하면서 배출되는 탄소를 운영탄소(operational carbon)라 부른다. 건물이라고 하면 건물을 짓기 위해 자원을 추출, 제조, 운송, 건설, 폐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내재탄소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시멘트와 철강을 만들고 이들을 운송하고, 또 이런 자재를 이용해서 건물을 짓고 수리하면서 배출되는 탄소이다. 반면 운영탄소는 냉난방을 하고, 조명을 켜고, 전자기기를 사용하면서 배출하는 탄소를 말한다.
세계녹색건물협의회에 따르면 건물 부문이 에너지 관련 탄소 배출의 39%를 차지하는데, 이 중 내재탄소가 11%, 운영탄소가 28%를 차지한다고 한다. 운영탄소가 건물의 탄소 배출에서 72%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그러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신축 건물에서 운영탄소의 비중은 50% 수준으로 낮아진다. 건물의 효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운영탄소의 비율은 낮아지는데, 이는 내재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 필요량이 적어서 운영탄소 배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건물이 노후됐고 에너지 효율이 낮다. 새로 지은 건물들은 기술이 발달하고 정부도 에너지 효율 기준을 높인 덕분에 에너지 사용량이 훨씬 적으면서도 쾌적하다. 그러나 모든 노후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을 수는 없기에 가장 비용 효과적으로 운영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법은 에너지 효율 개선에 방점을 찍는 ‘그린 리모델링’일 것이다. 정부도 그린 리모델링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원 실적을 보면 2021년에 1525억6800만 원이었던 총 사업확인 금액이 2022년에는 903억4400만 원으로 대폭 줄었다. 경기 침체의 영향이겠지만 에너지 절약 및 기후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쾌적한 거주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린 리모델링은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에서 활발해져야 한다. 에너지 당국이 이 문제를 푸는 데 더 많은 관심과 의지를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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