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내린 법정 최고이자율(현행 연 20%)이 불법사채 거래만 늘렸다는 한경 보도(3월 20일자 A1, 3면)는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법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2002년 연 66%에 달했던 최고이자 규제는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일곱 차례 인하로 2021년 연 20%로 낮아졌다. 저금리 기류도 반영됐다. 하지만 법정 이자율을 위반한 거래는 지난해까지 5년간 매년 늘었다. 이로 인한 불법 추심도 덩달아 증가해 지난해에는 적발된 것만 557건에 달했다.

대부업의 법정 최고금리를 계속 낮추자는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던 지난 정부 때 이어졌다. 고금리가 서민 금융활동에 부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복잡다기한 금융시장 실상을 무시하고 법으로 개입하면 부작용이 심각해진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하지만 ‘고금리=악(惡)’이라는 당시 여권의 인식은 견고했다. 백화점이 있고 전통시장이 있듯이 금융시장에도 다양한 시장이 있고, 틈새 대출시장까지 과도하게 규제하면 제도권 밖 불법 사금융이 기승을 부리게 돼 극단적 상황이 빚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지만 오불관언이었다. 높은 조달금리, 은행보다 심한 연체·부실률, 추심비용 등 ‘돈값’이 비싸지는 대부업 쪽 사정은 언급할 상황도 못 됐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격언이 한국의 입법 과정만큼 잘 들어맞는 곳도 드물다. 지난 정권 집값 급등기 때 세입자를 궁지로 몰아넣은 임대차 3법이 대표적이다. 강화 일변도의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징벌적 부동산세의 결과가 대개 다 그랬다. 선의를 가장했고, 때로는 실제 ‘착한 동기’에서 시작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엉터리 같은 주 52시간제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최근의 근로시간 규제 논란도 본질은 같다.

이런 한국형 규제법이 너무 많다. 뒤늦게 들어온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선거 때마다 한국 특유의 포퓰리즘과 겹치면서 과잉 공약이 되고 여의도에선 아예 일상사가 됐다. 이자 규제로 서민이 사채 지옥으로 내몰리는 ‘법정 최고이자율의 역설’ 현상을 민주당은 똑바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