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희승 “이재명 방탄 아냐…‘정치의 사법화’ 막자는 것”

입력:2024-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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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민주당 의원 인터뷰
‘허위사실공표죄 삭제·당선무효 기준 상향’ 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
“판사 시절부터 고민…여야 떠나 진지한 논의 필요”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판 기자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부분을 삭제하고, 당선무효의 기준을 현행 벌금 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법안 발의도 이 대표 선고 전후인 지난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즉각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게 법률이 되면 이 대표의 허위사실 유포죄 징역형 집행유예는 면소 판결로 사라지게 되는데, 그게 이 법의 목적”이라며 “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려서라도 이 대표를 구하겠다는 일종의 아부성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은 ‘이재명 방탄법’이 아니라 ‘정치의 사법화 방지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현행 선거법의 주요 골자는 의혹 제기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기성 정치인에게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며 ‘정치 개혁법’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박 의원은 “판사 시절 공직선거법 사건을 다루면서 ‘이게 맞나’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판사가 허위 사실이냐 아니냐를 재판을 통해 판단하는 게 국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실익이 있는지, 또 벌금 100만원을 기준으로 당선무효를 시키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선거 때마다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서로를 고소·고발하며 정치를 법원으로 끌고 간 정치인들이 ‘정치의 사법화’라는 악순환을 끊어 낼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는 ‘사법 자제’가 필요한 영역”이라며 “정치권에서 벌어진 일은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둬 의혹 제기 자체를 위축시킨다면 결국 권력을 쥐고 감출 게 많은 기성 정치인들이 유리한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반의 성숙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이번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은.

“실제 판사로 근무할 때 공직선거법 재판도 많이 다뤘다. ‘정치의 영역’은 정치권에서 풀어야지 법원까지 가져와서 재판하는 것은 큰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는 오히려 ‘사법 자제’가 필요한 영역이다. 과연 판사가 허위 사실이냐 아니냐를 재판을 통해 판단하는 게 과연 국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실익이 있나. 선거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서로 공방하며 당선과 낙선이 갈린다. 사회적 비용을 들여 선거를 치렀으니 이에 승복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고소·고발을 하며 정치 영역을 법원으로 끌고 와 재판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취지에 맞지 않다. 자칫 고소·고발을 통해 특정 세력이나 언론이 상대방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민생 재판도 할 게 너무 많은데 정치 재판까지 판사들이 시달리면서 재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법 자제’가 필요하다는 게 어떤 뜻인가.


“사법적 판단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의 통치 행위의 같은 경우에 사법 자제가 이뤄진다. 삼권분립에 의해 사법부가 손을 대지 않는다. 공직선거법 역시 입법부 구성과 관련된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법 자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거법 조문이 있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 공직선거법 재판 경험을 통해 이것은 국가적인 낭비라는 소신이 생겼다. 미국의 경우도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기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허위사실유포로 형사 기소를 한 전례가 없다. 일부 주에서 처벌 규정이 있다고는 하는데 한 번도 기소된 적이 없다. 정 심하면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면 된다. 또 국내의 경우 형법에도 명예훼손 처벌 규정이 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폐지해도 처벌이 가능하다.”

-판사들이 당선무효형을 의식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는데 실제 부담을 느끼나.

“실제로 판사들이 느끼는 부담이 크다. 일부 위법 행위가 발견돼 그에 맞는 벌금을 선고하고 싶지만, 당선무효형 기준이 100만원이다 보니 ‘이 정도로 당선 무효를 시키는 게 맞는가’ 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당선무효형까지 내리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벌금 70만원~80만원으로 선고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판사의 재량권이 축소되고 양형이 왜곡되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 예산 낭비도 너무 심하다. 선거가 끝난 뒤에 선거 도중 대화나 토론 중에 나온 것을 가지고 판사가 ‘진실 게임’을 하듯이 재판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결국은 이재명 대표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 같은데.

“이 대표 케이스를 겨냥한 법안은 결코 아니다. 22대 국회 등원하자마자 준비한 법안이다. 다만 법제실 검토 등 실무 과정이 길어지다 보니 우연히 법안 발의 시기가 이 대표 1심 선고와 맞물렸을 뿐이다. 그리고 법안 부칙을 통해 ‘이 법 시행 전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의 위반의 죄에 대한 벌칙의 적용에 있어서는 종전의 규정에 따른다’고 명확히 밝혀놨다. 따라서 ‘면소’를 언급하는 한동훈 대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또 이 법은 선거에 출마했던 모든 당선자와 낙선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문제다. 여당 소속 정치인들도 공직선거법으로 기소된 경우가 많다. ‘기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과거에도 국회에서 당선무효형 기준을 상향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의원들이 ‘셀프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해 중단됐다. 법이 완화되면 너무 무책임한 선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는 그럴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은 개인 SNS가 활성화돼있어서 누구든지 기자회견을 열어 반박할 수 있다. 서로 간에 공방이 가능하다. 과거와 달리 해명과 반론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있다고 본다.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오히려 기득권을 누리던 기성 정치인들만 유리할 뿐이다. 권력을 쥐고 있던 이들은 감출 것도 많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 신인들이 기성 정치인을 향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위축되는 역효과가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된 지금의 한국 정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정치권 전반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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