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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레미콘 파업에…서울도심 공사 줄줄이 멈출판

양연호 기자
입력 : 
2022-10-16 18:07:04
수정 : 
2022-10-16 21: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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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이촌 건설현장 차질
수도권 레미콘 운송차주들이 서울시내 운행을 거부하면서 서울 도심 건설 현장이 '올스톱'될 상황에 직면했다. 서울 도심 최대 규모 정비사업인 중구 세운지구를 비롯해 용산구 이촌동 등 주택건설 현장에서는 지난주부터 레미콘 업계 파업으로 시멘트 타설 공사가 중단됐다. 집단 운송 거부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사기간 지연에 따른 입주자 피해와 건설사 손실 등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16일 건설자재 업계에 따르면 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동조합 소속 수도권 5개 지부(동남북·안양·부천·고양파주·성남광주)는 이달 초부터 서울 4대문 등 도심권 레미콘 운송 거부에 착수했다.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 관계자는 "서울 도심권 레미콘 상차 거부로 대다수 공사 현장에서 레미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최근 건설사와 레미콘 제조사를 소집해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아직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 운송 거부 사태는 수도권 지역 노조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서울시내 진입이 이전보다 어려워진 만큼 건설사 측에 운임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레미콘운송노조 측은 "수도권 최대 레미콘 생산기지였던 삼표 성수공장이 사라지고 동남북 주변 교통체증과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통행제한 시간 등 시내 진입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건설공사의 핵심 자재인 레미콘은 만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굳기 시작하는 특성 때문에 공장 출하 후 60~90분 안에 건설 현장에 공급돼야 한다. 서울 4대문 안 레미콘 수요의 60%를 책임져왔던 삼표 성수공장이 올해 8월 철거된 이후 서울시내 건설 현장은 경기·인천지역 공장에서 레미콘을 받아오고 있다.

앞서 레미콘운송노조는 지난 7월에도 운반비 협상 과정에서 파업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운송노조와 레미콘 제조사들은 운송비를 향후 2년간 24.5% 인상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번에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섰고 건설사와 레미콘 업체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파업에 따른 공사 지연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단독] 레미콘 운송료 이미 24% 올렸는데…석달만에 또 인상요구

막무가내 노조·시멘트값 인상
레미콘업계 "사면초가" 멘붕

서울시 삼표성수공장 8월 철거
인천·경기서 레미콘 운반 해와
교통체증·회전 수 급감 이유로
건설사에 "집단 운송거부" 협박
이달부터 이어지고 있는 서울 4대문 내 레미콘 운송 거부 사태로 인해 지난 14일 서울 일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이 어려워져 골조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양연호 기자]
이달부터 이어지고 있는 서울 4대문 내 레미콘 운송 거부 사태로 인해 지난 14일 서울 일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이 어려워져 골조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양연호 기자]
수도권 지역 9000여 대의 레미콘 운송차량 차주가 소속된 레미콘운송노동조합은 매년 레미콘 제조사와 운반비 협상을 벌인다. 올해도 레미콘 제조사에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6월 집단 운송 거부에 나선 바 있다. 레미콘운송노조가 올해 운반비 협상을 마무리한 지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협상의 주체가 아닌 건설사를 대상으로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레미콘업계는 운송차주가 운송을 거부할 하등의 명분이 없다며 건설 현장에서 웃돈을 요구하는 등 이들이 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찰에 고발 조치를 하는 등 강경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16일 건설자재업계에 따르면 레미콘운송노조는 지난달 건설사들에 현재와 같은 악조건에선 서울시내 4대문 및 밀집지역에 레미콘 운송이 어렵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레미콘운송노조 측은 "그동안 수도권 5개 지부는 서울시의 운행 통행 제한 시행 등 불평등한 근무 조건에서도 불법을 감수하며 서울 4대문과 밀집지역에 레미콘을 운송해왔다"며 "그러나 주력 업체(삼표 성수공장)가 없어지고 과도한 교통 체증과 회전 수 급감 등으로 조합원들의 피로도가 증가해 더 이상 운송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레미콘운송사업자들은 레미콘 업체로부터 회전수당과 거리수당을 받는다. 회전수당은 레미콘 제조 공장과 건설 현장을 1회 왕복했을 때 받는 수당이고, 거리수당은 레미콘 업체가 기사들에게 지급하는 유류비다. 레미콘운송노조는 지난 7월 한국레미콘공업협회 등과 운송료 인상 협상을 진행한 끝에 현행 5만6000원인 수도권 레미콘 1회 운송료를 2024년까지 6만9700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따라서 레미콘 업체들은 이번 수도권 운송 차주들의 집단 운송 거부 사태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이미 레미콘 회당 운반비를 올해 7700원, 내년에는 6000원 등 2년간 1만3700원(24.5%) 인상하기로 협상을 끝내고 각 레미콘사들과 계약까지 마쳤는데 기존 합의를 뒤엎자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레미콘 업체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으니 이제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사실상 협박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레미콘 믹서트럭은 1만여 대로 노조 소속 6000여 명이 운송을 거부하면 레미콘 제조 공장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일부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는 이미 레미콘 공급이 끊기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호반건설이 진행 중인 서울 용산 국제빌딩 5구역 정비사업과 그 외 일부 이촌동 주거단지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 최근 골조작업이 중단됐다. 또 대우건설이 세운지구에 짓고 있는 주거단지와 계룡건설산업이 진행 중인 한국은행 통합별관 공사도 일부 공정이 멈춰선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건설사는 레미콘 믹서트럭 기사들에게 6만원가량의 웃돈을 줘가며 고육지책으로 물량을 조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라면 이번주부터 대부분 서울 도심 공사 현장으로 피해가 확산될 전망이다.

대체 공급시설 확보도 없이 무작정 철거부터 강행한 서울시의 안이한 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레미콘은 운송에 걸리는 시간이 90분을 넘어서면 굳어버려 폐기해야 하는 지역 밀착형 산업이다. 서울시내에서 현장을 운영하는 대부분 도시정비사업지는 레미콘의 상당 부분을 동부간선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삼표 성수공장에 의존해왔다. 수도권 최대 생산기지였던 삼표 성수공장(생산능력 1080㎥/hr) 철거로 서울 내 레미콘 생산기지는 천마콘크리트 세곡공장(720㎥/hr), 신일씨엠 장지공장(720㎥/hr), 삼표 풍납공장(420㎥/hr) 등 3곳만 남게 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성수공장이 서울 4대문 안 현장 수요의 60%를 책임져왔던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경기와 인천권 공장에서 물건을 가져오고 있지만 여의치 않아 만성적인 레미콘 공급량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레미콘업계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가파른 시멘트 가격 인상으로 원가 부담이 급증한 상황에서 운송노조 파업이 이어지고 하반기 건설경기 침체까지 현실화할 경우 올해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7월에도 레미콘운송노조가 운반비 협상을 이유로 파업을 단행하면서 레미콘업계는 3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추산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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