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도 이미 시작됐다. 장비 노후화와 기술력 부족에 시달리는 남미 국가들은 페루와 한국의 방산 협력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 산업화 기반 구축(페루)과 시장 진출 포석 확보(한국)의 '윈윈'의 걸음을 내딛고 있다.
미겔 요플락 FAME 기획본부장(예비역 대령)이 지난 5일 페루 리마에 위치한 육군 조병창에서 본지 기자에게 한 말이다.
FAME는 페루 국방부 산하의 국영 방산업체다. 탄약, 소총, 군용 차량, 비살상 무기 등 군·경 장비의 생산과 납품을 담당한다. FAME 특별법에 따라 군, 내무부, 지방정부 등에 공급 권한을 갖는다.
요플락 본부장은 "차량은 현재 한국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다"며 "탄약, 비살상 무기, 다연장포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총기류는 이스라엘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약 7000정 규모로, 조병창 내에 단순 조립 공정이 마련돼 있다. 이스라엘 부품을 조달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한국 기업 STX도 FAME와 함께 차량 조립 공정을 구축 중이다. 볼트와 너트를 이용한 단순 조립 수준이다. 다만 페루 입장에선 공장이 생기는 것은 물론 조립 라인을 통한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 한국 기업은 남미 다른 국가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요플락 기획본부장은"업체 선정에는 방위산업 위상, 정부 지원, 기업 신뢰도 등을 본다"면서 "파견된 무관의 동행도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국방부 소속 무관은 사택으로 FAME를 초대해 한국 문화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 전반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자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남미의 지정학적 특성과 방산 공급망을 고려하면 한국과 페루의 협력은 남미 방산 수출의 전초기지를 만드는 장대한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50년대 설립된 SIMA국영조선소의 주 업무는 △수리 △건조 △선박 관련 철강 제조 △군함 관련 무기 개발 등이다. 1970년~1980년대까지 군용, 산업용 선박 건조가 가능했지만 1990년대 정치·경제 위기로 동력을 잃었다. 한국 사례를 바탕으로 부활을 꿈꾸는 이유다.
루이스 로페스 실바 SIMA 사장(제독)은 "1970년대 한국, 1980년대 호주의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SIMA는 조선·방산 산업을 통해 후방 산업까지 키우는 전략이다. 기술이전과 현지화, 후방산업 육성을 중시한다. HD현대와의 협력에서도 해당 요소를 강조했다.
페루 해군은 향후 20년간 23척의 군함을 교체해야 한다. 6척의 잠수함 중 4척은 수리 대상, 2척은 교체가 필요하다. 조선소 내부에서 잠수함도 수리·개조 중이었는데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상업선 또한 25년 이상 사용된 배가 대다수다.
조선소 내부에서는 잠수함 수리·개조 작업도 진행 중이다. 시설은 낡았지만 수요는 크다.
실바 사장은 "우리는 전략적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서방과의 협력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SIMA국영조선소는 카야오항에 위치해 있는데 최근 페루 북부 지역에 대규모 중국 자본이 투입된 창카이항이 개항했다.
페루 입장에선 중국과 전략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카야오항에 대형 상선의 수리·개조가 가능한 드라이도크 건설을 검토하는 이유다.
실바 사장은 "남미 국가 대부분이 같은 시기에 배를 건조해 노후화 시점도 비슷한데 수리·개조 능력을 갖춘 국가는 많지 않다"며 한국과 함선 건조 계약뿐만 아니라 현지 생산, 기술이전 등에 관한 프로젝트 전반을 남미 국가가 지켜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기술이전이나 현지화가 우리기업에 문제가 되려면 해당국가의 산업 생태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페루의 경우 산업을 '조성'하고 싶은 단계다.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조선과 방산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기술 이전과 현지화 수준은 현재까지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현지화도 단순 조립 수준에 그친다. 완제품 부품을 가져와 조립하는 정도다. 페루는 이를 통해 공장과 일자리를 얻는다. 현지 기업 제품 사용도 큰 장애물은 아니다. 기술력이 부족한 경우, 페루도 강요하지 않는다.
기술이전 또한 기본 직능 교육으로 충분하다. 한국 기업 직원이 수십 년 노하우를 전수할 시간이 없다. 전체 공정에 지장 없도록 기본만 익히게 하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