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0일 열린 에너지위원회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갖추기 위해 원전 등 새로운 공급 여력 확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에 이어 정부가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장관의 말 한마디에 원자력 업계와 지역사회는 들썩이고 있다. ‘원전 4~6기 신규 건설’ ‘경북 영덕 천지 1·2호기, 강원 삼척 대진 1·2호기 건설 재개’ 등의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원전주도 급등하는 추세다.
정작 산업부는 전혀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장관 발표는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선언적 의미였다는 것이다. 후보지 물색을 포함한 본격적인 원전 건설 작업은 내년 후반기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 확정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전 신설안을 담기 위해 발표를 서둘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통상 1기의 원전을 짓는 데는 10~1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후보지 찾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윤석열정부 내에 신규 원전 지역 선정조차 매듭짓지 못할 수 있다. 4년 뒤 원전을 반대하는 정부가 정권을 잡는다면 사업이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신규 원전 구축은 불확실성이 크다.
매년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고민도 이해는 간다. 전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에 속도를 내고 싶은 그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미래의 에너지 부족 사태를 막는 것은 상징적 선언이 아닌 치밀한 계획과 전략이다. 원전 건설 논의를 시작하기까지는 최소 1년이 남아 있다. 이 기간에 온갖 괴담과 추측이 무성할 터다. 국민적 혼란도 불가피하다. 2030년부터 국내 원전 내 폐기물 저장 용량은 차례로 포화된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은 후보지도 못 찾고 있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운반할 송변전 설비 추가 구축도 과제다. 이런 얘기를 쏙 빼놓고 원전 건설 계획만 툭 던지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철저히 고민하고, 지역 주민과 국민을 설득할 비전부터 내놓는 게 순리다.
세종=박세환 경제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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