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데뷔한 5인조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PLAVE). 사진 블래스트
르세라핌의 ‘이지’(EASY), 비비의 ‘밤양갱’. 쟁쟁한 곡들이 후보로 오른 가운데, 지난달 9일 MBC ‘쇼! 음악중심’에선 5인조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의 미니 2집 타이틀곡 ‘웨이 포 러브’(WAY 4 LUV)가 1위를 차지했다. 가상 아이돌이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1위를 기록한 최초 사례다.
지난해 3월 데뷔해 활동 기간이 갓 1년이 지난 플레이브지만, 인기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발매한 미니 2집 음반은 초동(발매 후 일주일간 판매량) 56만장을 기록하며 ‘하프 밀리언’에 등극했다. 지난달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첫 단독 팬콘서트는 선예매 동시 접속자가 7만 명이 몰리며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매진됐다. 가상 아이돌의 이러한 무서운 성장세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플레이브는 실연자를 '본체'로 두고, 이들을 2D로 변환시킨다는 점에서 기존 AI(인공지능) 가수들과 차별화된다. 사진 블래스트.
“기술은 복잡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진솔해서 ‘사람 냄새’를 풍기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플레이브를 기획하고 제작한 이성구 블래스트 대표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성공 요인에 대해 이같이 짚었다. 2D 캐릭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단순히 AI(인공지능) 가수가 아니다. 멤버마다 ‘본체’인 실연자가 있고, 카메라와 특수 장비를 활용해 사람의 모습을 2D 캐릭터로 변환시키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버추얼(가상) 아이돌에 대한 시도는 많았다. 대부분 인간미를 덜어내고 휴먼 리스크(인간으로서의 위험요소)를 없애는 데 집중했다면 저희는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얻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준비할 때부터 멤버들이 직접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등 방향성을 두고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플레이브의 모든 멤버(예준·노아·밤비·은호·하민)는 작사, 작곡, 안무 창작에 참여한다. “멤버들은 자신들이 만든 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것 자체에 큰 행복을 느끼며 열심히 곡 작업 중”이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22일 오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플레이브(PLAVE)의 소속사 블래스트 이성구 대표. 사진 블래스트.
플레이브를 제작한 블래스트는 MBC 사내벤처에서 독립 분사한 버추얼 IP 스타트업이다. 2002년 MBC에 입사한 이 대표는 ‘선덕여왕’, ‘해를 품은 달’ 등 굵직한 드라마의 VFX(시각특수효과) 슈퍼바이저를 역임하며, 20년 동안 컴퓨터그래픽(CG) 업계에 몸 담았다.
가상 아이돌을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문자 텍스트, 디지털 음성, 이미지를 넘어 요즘엔 영상이 대세다. 그 이유는 영상이 소리, 이미지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저는 ‘실시간 그래픽’ 기술이 영상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플레이브의 사례를 보더라도, 공연 의상도 대기 시간 없이 바로 교체가 가능하고 무대 전환에도 물리적인 제약이 없다. 향후 ‘실시간 그래픽’을 통한 소통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플레이브를 통해 버추얼 아이돌 만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선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보통 K팝 아티스트의 팬덤은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다가 새로운 아이돌이 나오면 같이 좋아하거나 갈아타는 형태”라며 “플레이브 팬덤은 특이하게도 절반은 K팝 시장에서 왔지만, 나머지 절반은 웹툰·애니메이션 등 다른 장르를 좋아하다가 처음으로 K팝에 빠지게 된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대표가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해외 진출이다. 이 대표는 "플레이브가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하이브와 YG 플러스에서 투자받아 같이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있다"고 말했다. 또 “회사 내부에 AR(증강현실) 스튜디오를 만들고 있다. 다른 (현실) 가수들을 초대해서 함께 예능 출연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기술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