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때 11만원→4만원 됐는데, 에스엠 괜찮을까…'먹튀’ 막을 제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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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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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KCGI 퇴각 이후 주가 3분의 1로 떨어져
단기매매차익 반환제도 있지만 세력 막지 못해
전문가들 “사전 공시 강화 등 제도 개선” 한목소리


경영권 분쟁으로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추후 분쟁이 끝났을 때 일반 투자자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당사자나 현 최대주주, 혹은 경영진 중 한쪽이 패배와 동시에 주식을 팔아치우면 주가 또한 고꾸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타이거펀드를 들 수 있다. 지난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 지분 6.66%를 취득한 뒤 M&A 위협을 가하며 경영진 교체와 사외이사제 도입 등을 요구했고, SK텔레콤은 일부 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타이거펀드는 1년 뒤 보유 지분 전량을 SK 계열사에 매각해 600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얻었다.

최근에는 국내 펀드 사례가 다수 나오고 있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의 타깃이 됐다. KCGI는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며 경영 참여를 시도했고, 3년 넘게 오너 일가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그러나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보유 지분 17.4%를 호반건설에 모두 매각해 2배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당시 한진칼 주가는 11만원까지 치솟았으나, KCGI가 퇴각하면서 주저앉았다. 현재 한진칼 주가는 4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일러스트=이은현

경영참여를 선언했다가 금세 주식을 팔아치우는 ‘먹튀’를 막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10%룰이 있다. 10%룰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172조에 적힌 단기 매매차익 반환 원칙이다. 10%룰에 따르면 지분을 10% 이상 가진 투자자가 단순 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로 전환할 경우 6개월 이내에 발생한 해당 기업 주식 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주요 주주가 경영 참여 공시를 통해 주가를 올렸다가 단기간에 이익을 내고 먹튀하는 일이 없게끔 만든 제도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나 펀드가 상장회사 주식 100만주를 1만원에 매수했다가 며칠 뒤 1만3000원에 되판다면, 차익실현금 30억원에서 매매 거래수수료와 증권거래세액 등을 뺀 모든 금액을 해당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10%룰은 무용지물이 됐다. 지난 2021년 자본시장 활성화로 운용 목적에 따른 펀드 구분이 없어지면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에 적용됐던 ‘10%룰’이 완화된 것이다. 원래는 국내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 활동에 관여하려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를 통해 지분을 10% 이상 매입하고 6개월간 보유해야 했다. 천문학적 자금을 보유한 엘리엇 등 외국계 펀드와 달리 규모가 작은 토종 사모펀드는 사실상 경영 참여 선언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규제 완화로 인해 국내 중소형 사모펀드도 최대주주에게 배당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투자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말하면 10% 이상을 보유하지 않으면 단기이익을 반환하는 10%룰 적용의 대상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본부장(법학 박사)은 “단기매매 차익 반환제도는 10% 이상 들고 있는 경우가 대상인데, 행동주의 펀드가 10% 이상 들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사실상 지금의 행동주의 펀드는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의 단기매매 차익 반환제도는 회사 임직원, 주요주주 등 내부자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를 막기 위한 제도”라면서 “행동주의펀드의 단기 먹튀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대표(왼쪽, SM엔터 제공)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

전문가들은 모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사전 공시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가 철회하고 주식을 팔 때는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부자 증권거래는 시장의 가격 형성기능에 매우 중요한 정보로 사전에 공시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M&A업계 한 고위 관계자도 “먹튀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지분 공시를 철저히 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또 한 기업을 분산 소유했던 펀드들이 공동 목적이라는 게 밝혀질 때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시 시스템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수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겠으나) 감시 시스템을 더 갖출 필요가 있다”면서 “공시를 강화하는 등 시장의 감시 기능이 더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행동주의펀드 자체를 제재하기보다는 M&A 과정에서 불공정거래가 내재해있거나 시세 조정 등을 한다면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영권을 보장하는 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행동주의펀드들의 M&A 작업을 법률적 잣대로 재단하기보다는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안 주고 공격하는 걸 막기보다는 경영권 방어 수단도 주고 공격도 하게 놔두자는 것”이라면서 “그 과정에서 주가 조작이 있었다면 처벌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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