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준위 방폐물을 담은 저장 용기를 보관하고 있는 캐나다 달링턴 원전 내 저장시설. 정종훈 기자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 포화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첫 단추인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은 국회에서 꽉 막혀있다. 같은 원전 강국인 캐나다가 입법·공론화를 거쳐 내년 부지 선정을 앞둔 것과 대비되는 거북이걸음이다.
국내 원전 25곳에선 매일 전력 생산의 대가로 고준위 방폐물이 나오고 있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남 영광 한빛원전의 원전 내 저장시설이 가득 찰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은 2030년이다. 한울(2031년)·고리(2032년) 등 나머지 원전도 줄줄이 포화를 앞두고 있다. 이대로면 고준위 방폐물을 저장할 곳이 없어지고, 원전 운영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 유일한 해법은 수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별도의 영구 처분장이다.
원전 운영을 시작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영구 처분장은 갈 길이 멀다. 처분장 설치의 법적 근거가 될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은 여야에서 3건 발의됐지만, 양측 의견차 속에 지난해 말부터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내년 총선 때문에 법안 통과의 '마지노선'으로 꼽힌 올 상반기도 이미 넘겼다. 지난 5~6월 원자력 전문가들과 원전 소재 지자체들이 한목소리로 특별법 제정을 연이어 촉구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첫 단추' 특별법 여야 발의에도 삐걱, 통과 무산 우려

김영옥 기자
7월 임시국회에 따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가 13일 열리지만 법안 처리는 불투명하다. 소위 테이블엔 이인선·김영식(국민의힘), 김성환(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특별법 제정안과 홍익표(민주당) 의원의 방폐물관리법 개정안이 함께 올라간다. 국회 관계자는 "그나마 안건 순서가 앞쪽으로 올라오긴 했지만 여야 입장이 다르고 소위 위원 교체 등 변수가 많아 통과까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2대 국회로 공이 넘어가면 법안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원전 19기를 운영 중이며, 방폐물 처분장 선정에서 앞서 나간 캐나다와 비교된다. 캐나다는 방폐물관리기구(NWMO)를 중심으로 2010년 부지 선정 과정에 착수해 2019년 온타리오주의 이그너스 타운십·사우스브루스 두 곳으로 후보지를 좁혔다. 최종 부지 선정은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1년 미뤄져 내년 후반께 이뤄질 예정이다. 10여년간 공론화 작업을 거쳤지만 큰 잡음 없이 계획표대로 가고 있다.
캐나다 의회도 사회적 논의를 적극 뒷받침했다. 2002년 사용후핵연료법을 제정하면서 법적 근거를 빠르게 마련했고, 추진 계획도 승인했다. 원전 찬반을 떠나 이미 발생한 방폐물의 보관과 미래 세대 안전을 위해 처분장이 필수인데, 한국·캐나다 양국이 출발점부터 다른 셈이다.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을 보관할 금속 용기를 설명하는 캐나다 NWMO 관계자. 정종훈 기자
방폐물 용기 옆 방사능↓…캐나다 "그래도 시민 이해부터"

김영옥 기자
지난달 8일(현지시간) 캐나다 달링턴 원전 내 고준위 방폐물 저장 용기는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온 열기로 따뜻했다. 하지만 방사능 방출량은 시간당 0.024mSv(밀리시버트)로 적은 수준이었다. 방폐물 관리가 안전하게 이뤄지지만, 캐나다 시민들도 100% 안심하진 않는다. 피커링 원전 인근 주민인 폴 어맨사(63)는 "원전 운영 이후 환경 정화 등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캐나다 당국은 투명한 과학적 정보 제공과 소통을 최우선으로 한다. 피터 키치 NWMO 매니저는 "시민 동의를 얻으려면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이상 공론화를 진행하면서 많은 지역·국민과 자리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의 원자력 전문가인 크리스 키퍼 박사는 "처분장 부지 선정은 안전보다는 소통의 문제다. 찬반 의견을 다 듣고 실질적인 결정은 과학 자료에 바탕을 두고 결론을 내면 된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의 월성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사진 한수원
韓, 국회 내 논의 시간도 쫓겨 "방폐물 미루면 미래 세대 부담"
반면 한국에선 국회의 공식적인 논의도 덜컥거린다. 여야 모두 법안 필요성에 공감한다지만, 정부의 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야당이 상대적으로 논의에 소극적이다. 5월 산중위 법안소위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 막바지 수석전문위원의 특별법 쟁점 사항 보고가 사실상 전부였다.
오후 6시 소위 종료까지 5분가량 남아 정부 측 답변을 듣지도 못했다. 의원 간의 치열한 토론은 전무했다. 결국 특별법안을 발의한 이인선 의원이 "자꾸 너무 미뤄지지 않도록 해 주시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소위에 7번 상정됐는데 실질적 논의는 두 차례에 불과했다. 국회서 최소한의 협의도 안 하니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꼬집었다.
윤종일 카이스트(KAIST) 원자력·양자공학 교수는 "고준위 방폐물 처리는 정권과 상관없이 해결해야 할 국가적 사안인 만큼 여야가 정치적 논리를 내세우기보단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면서 "법부터 통과돼야 국민에게 처분장 선정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도 물을 수 있다. 특별법이 무산되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고 국민 신뢰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