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에 460억원이 날아갔다…한맥증권 사태란?[손엄지의 주식살롱]

손엄지 기자
입력
수정 2023.04.10. 오전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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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결제대금 돌려달라'며 한맥투자증권에 소송…1, 2심 승리하고 대법원 판결 기다려
증권사, 알고리즘 매매 시스템 개선…거래소, 직권 취소제도 도입
ⓒ News1 DB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최근 한국거래소의 영업보고서를 보니 여전히 한맥투자증권과 소송을 하고 있더라고요. 법원은 1, 2심 모두 한맥투자증권이 한국거래소에 411억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한맥증권의 항고로 대법원의 결정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10년 넘게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거래소 2022년 영업보고서

'팻 핑거(fat finger)'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직역하면 뚱뚱한 손가락인데, 증권 매매 시 손가락이 굵어서 입력을 실수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지난 2013년, 이 팻 핑거로 한 증권사가 하루아침에 도산했습니다.

2013년 12월12일. 한맥투자증권 직원은 코스피200 옵션을 주문하려고 알고리즘 매매 시스템을 켰습니다. 옵션이란 미래 특정 시점에 금융자산을 정해진 가격에 사거나(콜옵션) 매도할(풋옵션) 권리입니다. 예를 들어 1000만원짜리 샤넬백을 800만원에 살 수 있는 100만원짜리 옵션이 있습니다. 한 달 뒤 샤넬밸 가격이 700만원으로 내려오면 100만원 손해를 감수하고 옵션을 포기하고, 1200만원으로 오르면 옵션을 행사해 300만원의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옵션거래입니다.

해당 직원은 잘못된 입력값을 넣으면서 옵션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옵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이자율인데요. 콜옵션의 프리미엄은 이자율이 높아지면 증가하고, 풋옵션의 프리미엄은 감소하는 식입니다.

직원은 이자율을 계산할 때 '잔여일/365'로 해야 하는데, 실수로 '잔여일/0'이라고 써넣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프로그램은 모든 거래가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막대한 양의 거래를 체결해버렸습니다. 직원은 실수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전원코드를 뽑았지만 이미 143초 동안 3만7900여건의 거래가 이뤄진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460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고요.

잘못된 주문이 쏟아지면서 선물 시장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시장 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옵션을 매수하고, 시장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옵션을 매도했으니까 가격은 크게 치솟았죠. 당시 시장 참여자들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냐고 우려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맥투자증권 대표는 곧바로 한국거래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주문이 나간 것들에 대해 체결취소를 해달라고요. 하지만 거래소는 "체결을 취소할 수 없다. 구제신청을 해라"고 답했습니다. 한맥투자증권의 전 직원은 잘못 나간 주문 3만7900여건에 대해 구제신청을 했지만, 마감 시한인 오후 3시 반까지 상당수의 거래는 구제 신청도 못 해보고 끝났습니다.

이후 한맥투자증권은 거래 상대자를 찾아다니며 이익을 돌려달라고 빌었는데, 국내 증권사들은 돈을 돌려줬지만,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간 외국계 증권사들은 "내가 왜?"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미국 헤지펀드 '카사 캐피탈'은 무려 360억원의 이익을 챙겨갔습니다.

거래소는 거래가 체결됐으니 일단 돈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거래소는 한맥투자증권 대신 증권사들의 자금으로 만든 손해배상공동기금에서 460억원을 내줬습니다. 당시 한맥투자증권의 자본금은 203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국내 증권사들로부터 59억원은 돌려받았지만 400억원이 넘는 돈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거래소는 한맥투자증권에 '손해배상공동기금'을 돌려달라며 구상금 청구를 했고, 한맥투자증권은 거래소가 파생시장의 감시 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남았지만 1, 2심은 모두 거래소의 편이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도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습니다.

이 사건 이후 자본시장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알고리즘 매매에서는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주문이 체결될 때 경고 문구가 뜨거나 체결을 막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거래소는 직권 취소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대규모 결제 불이행이 예상되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해서 거래소가 직권으로 거래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시간 호가 제한, 착오거래 구제제도, 사후증거금 요건 인상 등 여러 제도도 만들어졌고요.

자본시장이 '속도'에 치중한 나머지 '안전성'을 외면한 결과였습니다. 한 사람의 '팻 핑거'였지만 모든 증권사와 거래소가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됐습니다. 당시 이같은 실수는 그 직원이 아니더라도 어떤 증권사, 어떤 직원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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