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으로 대표되는 세계 D램 3강의 미세공정 기술 격차가 약 3개월 수준으로 좁혀졌다. 한때 삼성전자와 타사의 미세공정 격차는 적게는 6개월에서 1년 이상 벌어지기도 했지만, 기존의 불화아르곤(ArF) 노광 장비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온 D램 미세공정이 한계 수준에 도달하면서 3사의 격차는 올해 들어 사실상 동일선상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3사는 치열해지는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한해 60여대 정도만 생산되는 EUV 장비는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미세한 전자 회로를 그려 넣는 노광(포토) 공정에서 쓰인다.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미세 공정에 필수로 쓰이는 장비다 보니 EUV 장비 확보가 곧 사업 경쟁력으로 평가받는다.
21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공정 로드맵과 투자은행 UBS의 자료를 종합하면 3사의 차세대 미세공정 1b(10㎚급 5세대) 공정 도입 시기가 내년 1분기로 추정된다. 자료에 따르면 업계 1위인 삼성전자와 2위인 SK하이닉스의 공정 전환 속도가 3개월 차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마이크론은 연내 3사 중 가장 먼저 1b 공정 도입을 선언했지만, 지난 17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등에 따르면 시장 상황 악화에 따라 일정을 내년 1분기 이후로 늦출 것으로 보인다. 1b는 기존 최신 D램 생산공정인 14㎚(1a) 공정보다 회로 선폭을 더 줄인 12㎚ 생산공정을 말한다.
D램 미세공정은 20㎚에서 10㎚대로 진화하며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왔다. 10㎚대 후반대인 1x 공정에서 삼성전자는 2016년 1분기에 세계 최초로 본격 양산을 시작했고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뒤에야 안정화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10㎚대 후반을 의미하는 1~3세대(1x, 1y, 1z) 공정에서 항상 ‘세계 최초’의 기록을 이어 왔으나, 지난해 1월 마이크론이 4세대 1a D램을 양산하면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넘겨주게 됐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달리 기존 장비로 여러 번 미세한 회로를 그려 넣는 ‘패터닝(patterning)’ 작업을 수행하는 멀티패터닝 기술로 더 빠른 미세공정 전환 속도를 달성했다. 이 공정을 사용할 경우 기존 방식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회로를 여러 번 덧그려야 하는 만큼 공정 스텝수가 늘고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세 기업 간 D램 기술 경쟁의 ‘본게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삼성전자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차세대 장비인 EUV를 D램 공정에 적용하기 시작한 이후 단기적으로 미세공정 전환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10㎚ 이하의 미세공정을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려왔다.
삼성전자는 구체적으로 EUV 보유 대수를 공개한 적은 없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네덜란드의 EUV 제조업체인 ASML로부터 수조원대를 들여 최소 20여대의 EUV 장비를 생산 공정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이천 공장에 2대의 EUV 장비를 들여놓으며 D램 양산을 안정화하고 있는 단계다.
마이크론은 아직 EUV를 도입하지 않은 상태다. 당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쉬운 길’을 택했다. 하지만 마이크론 역시 내후년 양산하는 1c 공정부터는 EUV 장비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EUV를 도입 과정에서 생산 안정화, 수율(양품 비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마이크론 역시 뒤늦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10㎚ 초반대부터 그 이후 공정에서는 기존 장비로 생산성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메모리 기업 간의 EUV 확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많은 EUV 장비를 확보하고 파운드리, D램 등 양산 과정에서 노하우를 가진 삼성이 추후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