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16Gb(기가비트) DDR5 D램.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 과잉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지난해 4분기부터 단행해온 ‘폭탄 세일’을 최근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판매가격(ASP)보다 40% 낮은 가격으로 D램 재고 털어내기에 나섰던 두 기업이 다시 가격을 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위험수위에 도달했던 과잉재고 문제가 점진적으로 해소되고 있다는 신호로 반도체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27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의 최근 D램 공급가격이 지난해 4분기에 비해 약 15~18% 수준 하락하는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000660) 역시 10%대 중반대 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4분기에 두 회사는 D램 판매가격을 전 분기보다 30~40% 내리며 시장 전체의 D램 가격을 급격하게 끌어내렸다.

두 회사가 가격 인하폭을 조정하고 나선 것은 재고 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신호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 10월쯤부터 본격화한 주요 기업의 감산 노력이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D램 공급의 95%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공급 조절에 나서면서 수요 부진에 따른 공급과잉이 완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마이크론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을 20% 축소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수익성 낮은 제품군을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을 20~30%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감산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생산라인 재배치, 신규 증설 지연, 미세공정 전환 확대 등으로 전반적인 생산능력이 감소 추세다. 또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경우 최첨단 D램 공정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적용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산능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감산 발표 이후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건 최소 3개월 이후다. 웨이퍼 투입 이후 제품 출하까지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이 3개월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이후 주요 기업의 웨이퍼 투입량이 감소했기 때문에 올해 2분기 이후 반도체 시장에 감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최근 삼성전자가 D램 가격을 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연내 메모리 수급이 균형을 되찾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내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은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업계가 전체적으로 안 좋아질 것은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그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한종희 부회장 역시 이달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부터는 메모리 시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PC, 서버 등 D램의 주요 매출처에서 다시 수요가 촉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3 등을 비롯해 중국 기업의 신형 스마트폰 출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최대 소비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이 강력하게 고수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하면서 IT 수요가 전반적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램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서버 시장도 인텔의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출시로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인텔이 이번 4세대 사파이어래피즈부터 DDR5 규격의 D램을 지원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최첨단 D램 출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픈 AI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새로운 데이터센터 설립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반도체 하락 사이클에서 업황과 주가 바닥의 신호는 감산효과 가시화, 재고감소, 가격하락 둔화 시점이었다”면서 “과거 20년간 반도체 산업 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2분기부터 감산효과 가시화가 전망되고, 반도체 재고도 정상수준 근접이 기대되며 D램, 낸드 가격 하락 둔화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