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해왔던 영풍(000670)그룹의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의 고려아연(010130) 지분 경쟁이 다시 점화했다.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영풍그룹을 설립한 이후 고려아연 계열사들은 최씨 일가가, 다른 전자계열사 등은 장씨 일가가 맡아온 전통이 흔들리면서 서로 우호세력을 경쟁적으로 늘리는 모습이다.

고려아연은 최창걸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의 보유 주식이 지난 8월 30일 46.17%(917만1302주)에서 15일 46.85%(930만6395주)로 늘었다고 공시했다. 가장 주식을 많이 사들인 것은 장씨 측으로 분류되는 코리아써키트다. 코리아써키트는 지난 8월 고려아연 주식 5602주(0.03%)를 처음 사들인 데 이어, 지난 9일까지 5만2941(0.27%)를 추가로 매입했다.

코리아써키트는 장병희 창업주의 손자이자, 장형진 영풍 고문의 장남인 장세준 대표가 이끌고 있다. 장 대표 등 특수관계인이 코리아써키트 지분의 51.85%를 갖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각 사 제공

테라닉스도 기존에 보유하던 고려아연 주식 2만1231주에 더해 지난달까지 4만9738주를 더 매입하면서 지분을 0.36%(7만959주)로 늘렸다. 테라닉스 역시 장 고문과 영풍, 코리아써키트 등이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장씨 일가 우호 지분으로 분류된다. 장 고문의 개인 회사인 에이치씨도 지난 8월 고려아연 주식 800주를 산 데 이어 추가로 1만1000주(0.06%)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풍정밀도 고려아연 주식 1만7611주를 추가로 매입해 고려아연 지분을 1.57%(31만2721주)까지 늘렸다. 영풍정밀의 경영권은 최씨가 보유하고 있다. 다만 영풍정밀 지분 격차는 최씨 일가 약 29%, 장씨 일가 약 22%로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밖에 최씨 일가 4세들도 고려아연 지분을 0.01% 미만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까지 고려아연 지분은 장씨 일가가 10%포인트(P) 이상 더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자사주를 한화(000880), LG화학(051910) 등과 맞바꾸면서 우호세력을 늘려 양쪽의 지분 격차가 좁혀져 왔다. 이번에 장씨 측이 고려아연 지분을 더 많이 매입하면서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지분율은 기존 31.36%, 27.78%에서 31.94%, 27.89%로 바뀌었다. 지분율 격차는 3.58%P에서 4.05%P로 다시 벌어졌다.

지분 경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현재 최윤범 회장과 삼촌인 최창근 명예회장을 비롯해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 이사회는 최씨 일가에 우호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최 명예회장 등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 등의 임기가 2023년 3월 주주총회로 만료된다. 주주명부폐쇄일(12월 31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확보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주식 매입 시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장씨 측인 코리아써키트와 테라닉스 등은 고려아연 주식을 꾸준히 사들인 것과 달리, 최씨 측인 영풍정밀은 지난달 25일부터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한화와 LG화학 등과 자사주 교환을 마친 뒤부터 지분 매입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문제를 피하고자 그동안 최씨 측이 지분 매입에 소극적이었는데, 앞으로 지분을 확대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