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이 전혀 없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가운데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거대 금융기업들은 석탄 광산 등 관련 업계에 대출을 제공하면서 자금 공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탄은 기후 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원인 만큼 석탄 광산 개발은 물론 석탄발전소 가동이 중단돼야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지만, 금융권은 석탄 업계가 돌아갈 힘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일(현지 시각) ‘누가 석탄을 살리고 있나’라는 기사를 통해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연료를 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뭄바이에서 석탄을 바구니에 담아 운반하고 있는 사람. / 로이터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석탄은 전 세계 연료 연소 부문 온실가스의 약 42%를 차지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IPCC)는 2018년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IEA는 이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2030년까지, 나머지 나라는 205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퇴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IEA는 또한 새로운 광산 개발과 기존 광산을 확대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기후 전문가들은 석탄 매장량의 80%를 사용하지 않고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석탄 광산이 운영되는 것을 막으려면 해당 분야에 자금 공급이 중단돼야 한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유럽 바클레이스·BNP파리바·도이치뱅크 등 전 세계 200여 개 글로벌 금융기업은 해당 의견에 동의하고 지난 2021년 ‘탄소 중립 은행 연합(Net-Zero Banking Alliance)을 만들었다. 탄소 중립 은행 연합은 유엔(UN) 주도하에 설립된 단체로 대출, 투자 등 보유 자산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석탄 수요는 지난해 역대 처음으로 80억 톤을 넘어서는 등 활황이다. 석탄 산업에 투입되는 자금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운명이 다한 석탄 개발에 금융권이 기름칠하고 있다”며 “더 충격적인 사실은 2030년대까지 석탄 산업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금융권이 자금을 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무역 회사의 재무 책임자들을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 DBS, 스위스 UBS 등이 석탄 구매 자금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등 주요 석탄 소비국이 위치한 아시아 지역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영국 스탠다드차터스도 석탄 구매업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실시 중이다. 프랑스 지역 은행은 석탄 구매에 대한 대출을 줄이는 대신 호주,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등 석탄 생산국에 대한 대출 규모를 늘렸다.

기존 석탄 광산이 더 많은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도 쉬운 것이 현실이다. 2018년 이후 주요 석탄 광산은 광산 일부 또는 전부를 매각했다. 그러나 매각된 광산은 개인 채굴업체, 사모펀드의 손에 들어갔다. 2021년 런던에 기반을 둔 앵글로 아메리칸은 남아프리카 광산을 매입한 즉시 석탄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광산 소유자는 석탄 광산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고 비판했다.

석탄 채굴업자가 대출받기도 쉽다.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1년까지 석탄 채굴업자는 총 620억 달러를 대출했다. 일본 스미토모은행, 미츠비시은행이 가장 많은 금액을 석탄 채굴업자에게 대출했다. 중국 내 은행들과 미국 JP모건체이스가 그 뒤를 따른다. 씨티그룹 등도 상위 15위 안에 올라가 있다. 우르게발트는 2022년에 “대형 은행 60곳이 전 세계 30대 석탄 생산업체에 130억 달러를 대출했다”고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금융회사의 석탄 배제 정책이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석탄 산업에 대한 대출이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는 “합리적인 기간 내에 다각화 전략이 없는 석탄 광산 회사에 대한 자금 조달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호주의 거대 광산 회사인 피바디에는 계속 대출을 해주고 있다.

석탄 업계에 자금 공급이 이어지면서 석탄 수요는 2023년 이후에도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빚어진 에너지난으로 아시아 국가는 석탄을 생명줄로 여기고 있다. 여기다 석탄은 다른 연료보다 저렴하고 풍부하다. 선박 및 화물 터미널 구축에만 수년이 걸리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달리 석탄은 선박만 있으면 어디로든 운반할 수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270기가와트 규모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며 인도와 동남아시아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 중인 것도 석탄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지난 10년 동안 석탄 거래량이 10억 톤이나 9억 톤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적이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석탄 거래, 석탄 운송 분야에서 투자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로 인해 기존 석탄 광산에서 더 많은 석탄이 채굴되고 있고, 새로운 광산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