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공원(옛 효창원)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 전시실 1층에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의 흰색 대형 좌상(坐像)이 있고, 좌상을 에둘러 시대상과 활동, 가계와 일대기를 전시해 놓았다.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자서전 격인 《백범일지 白凡逸志》와 임시정부 내 주요 보직과 역할 등을 시기별로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탐방을 마치고 《백범일지》가 새삼 궁금해졌다. 이내 인터넷서점을 통해 새로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새롭게 편집된 최신판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김구 선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통상 표면적으로 얘기하는 〔민족지도자 民族指導者〕라는 수식어에 의구심이 생겼다. 혹여 김구 선생의 사상을 〔민족 民族〕에만 국한해 놓고는, 지나간 과거 역사의 한 인물로만 축소해 놓고는, 그의 진면목(眞面目)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의 소원〉을 다시 새롭게 읽어 보니, 김구 선생께서 스스로 자신의 정치이념을 밝혀 놓으신 부분을 보고 크게 놀랐다. 흔히 〔자유 自由〕의 신봉자로 초대 국회의장을 거쳐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박사를 꼽곤 하는데, 김구 선생께서는 명징한 언어로 누누이 곳곳에서 〔자유 自由〕가 자신의 근본 정치이념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특히 문화강국이 되기를 소원한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저변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전제(大前提)로서 대자유(大自由)가 있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동서양 막론하고 세계의 이념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재삼재사 〔자유 自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셨다. 선생은 “우리나라가 독재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미 “어떠한 형태라도 독재정치는 배격한다”고 말씀하셨고, 동포들에게 “독재국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종(警鐘)을 울리고 또 대오각성(大悟覺醒)를 촉구하고 계셨다.
아래는 지난 6월 26일(목) 백범 김구 선생의 제76주기 추모식을 맞아 새삼 〔백범김구기념관〕을 탐방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차분하게 곱씹고, 선생의 유명한 글 〈나의 소원〉 중에서 일부분을 필사하며 정리한 것이다. 마치 선생께서 직접 육성(肉聲)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을 듯하다.
주된 내용은 ▲ 조국에 돌아오며 느꼈던 귀환의 감격 ▲ 효창공원에 조성된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가묘(假墓)와 일본에서 참혹하게 순국한 백정기(白貞基, 1896~1934),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이봉창(李奉昌, 1900~1932) 등 세 분 의사(삼의사 三義士)의 봉환, 그리고 ▲ 백범 김구 선생께서 직접 밝히신 정치이념 〔자유 自由〕에 관한 것이다. 몇 차례 나눠 싣는다.


■ [백범일지] 조선의 멸망 원인: “유교 양반정치도 계급독재, 사상독재는 문화소멸, 가장 무섭다“
우리나라의 양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이어니와 이것은 수 백 년 계속하였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일의 나치스의 일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 백 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학문·사회생활·가정생활·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다.
이 독재정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경제·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실로 여기 있었다.
왜 그런고 하면 국민의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집권 계급의 사람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이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에서 글을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는 범주 밖에 나지 않는 이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 눌려 죽은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 [백범일지] 내 정치이념은 자유: “나는 독재의 나라를 원치 않는다. 자유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절대로 각 개인이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하면 이것은 나라가 생기기 전이나, 저 레닌의 말 모양으로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있는 일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이러한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일개인에서 오는 것을 전제 또는 독재라 하고, 일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거니와,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역일 때에는 이것을 제거하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니,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거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서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1947년
샛문 밖에서

※자료: 김구(1947), 도진순 주해(2024, 1997), 《백범일지: 백범 김구 자서전》, 돌베개
백범일지 : 알라딘
는 1947년 최초로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현재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전국민의 필독서.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생애
www.aladin.co.kr
※ 참고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 기념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범일지⑥] 김구 선생,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남녀 청년들 교육에 마음 쓰라” (2) | 2025.06.29 |
---|---|
[백범일지⑤] 김구 선생, “자유의 나라에서만이 높은 문화 발생, 동포여! 독재정치 조심하라” (2) | 2025.06.29 |
[백범일지③] 김구 선생, 용산 효창원 삼의사 장례: “일제 학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유골 귀환 감개무량” (4) | 2025.06.28 |
[백범일지②] 김구 선생, “27년만의 조국귀환 감격: 명랑한 학생들 기쁨, 생활수준 저열 유감” (1) | 2025.06.28 |
[백범일지①] 김구 선생, “내 근본 정치이념은 자유, 자유 없이는 문화 없다” (1) | 2025.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