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2차전지용 양극박 생산 기업인 롯데알미늄이 고객사인 삼성SDI(006400)와 SK온의 승인을 받지 않은 기기로 양극박을 생산·납품해온 사실이 최근 밝혀진 가운데, 고객사들이 미승인 기기로 만든 양극박을 납품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알미늄과 삼성SDI, SK온은 미승인 양극박을 써도 배터리의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롯데알미늄이 미승인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은 전체의 35% 정도로, 향후 실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알미늄은 지난 수년간 승인받지 않은 단재기로 만든 양극박 제품을 삼성SDI, SK온에 알리지 않은 채로 납품해 왔다. 양극박은 이차전지의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양극집 전체에 사용되는 얇은 알루미늄 막으로 양극 활물질을 지지하는 동시에 전자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소재다.

롯데알미늄의 최대 주주는 38.23%의 지분을 보유한 ㈜호텔롯데이며 일본 ㈜L 제2투자회사(34.91%), 일본 ㈜광윤사(22.84%), ㈜호텔롯데부산(3.89%)이 뒤를 잇고 있다. 호텔롯데 지분은 일본 ㈜롯데홀딩스와 ㈜L 1·2·4·5·6·7·8·9·10·11·12 투자가 대부분 들고 있는데, ㈜L 투자회사들 지분은 대부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월드타워 개장식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롯데 제공

롯데알미늄은 수년 전부터 이런 납품 행위를 이어온 것로 알려졌다. 고객사의 승인을 받은 기기만으로는 계약된 물량을 전부 소화하기 어려워지자, 미승인 기기로 생산해 납품한 것이다. 롯데알미늄은 지난 2021년 2월 미승인 상태의 단재 56호기로 생산한 양극박을 여러 차례 고객사 해외 법인 등에 납품했다. 지난 1월에도 미승인 단재 51호기로 양극박을 생산해 납품했고, 비슷한 시기 다른 고객사에도 승인받지 않은 단재 51호기로 생산한 양극박을 납품했다.

롯데알미늄에 따르면 삼성SDI, SK온 등 고객사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뒤 롯데알미늄 측으로부터 미승인 기기를 통해 생산된 물량에 대한 납품을 취소했다. 문제가 되는 미승인 기기는 2020년 9월 양극박 생산을 위해 신규 도입해 테스트 중이던 설비로, 고객사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승인 기기로 생산되던 물량은 전체의 35% 정도다.

미승인 양극박 납품이 취소되면서 롯데알미늄의 실적에도 일부 타격이 예상된다. 롯데알미늄은 지난 2021년 연결기준 매출 8560억원, 영업이익 20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6%, 영업이익은 177% 늘었다. 롯데알미늄은 아직 지난해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롯데알미늄 양극박 및 양극박 생산 기계./롯데알미늄 홈페이지

배터리 업체들은 각자 다른 생산 규격을 가지고 있어 소재 납품사들도 이들 업체가 요구하는 규격에 맞춰 제품을 가공해 판매한다. 이를 위해 배터리 업체들은 소재사가 사용하는 기기에 대한 자체적인 승인 과정을 거치고, 이를 통과한 기기에서 생산된 소재를 건네받아 제조에 사용한다. 통상 기기 승인에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며, 잠재성평가-샘플평가-생산부품승인평가-양산승인평가의 과정을 거친다.

롯데알미늄은 기존 미승인 기기로 생산됐던 양극박도 승인된 기기로 생산한 물량과 품질에 차이가 없으며, 납품 전 검사를 통해 품질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업체들 역시 납품받은 양극박을 배터리 제작에 이용할 때 자체 품질 검사를 통과한 제품들만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출고된 제품에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신뢰를 잃은 롯데알미늄이 향후에도 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업체들도 소화해야 하는 물량이 있어 당장 납품 업체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이나, 협력사 간 신뢰 문제를 미뤄볼 때 장기적으로는 계약을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롯데알미늄 관계자는 “신규 도입된 설비는 이미 품질에 대한 확인을 진행 중이며, 배터리 회사로부터 품목별로 승인이 나오고 있다”며 “납품 계약에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필요시 고객사 측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