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폴란드~핀란드 3500㎞ '新 철의장막' 만든다…나토 러 접경국, 지뢰협약 탈퇴

기사등록 2025/07/02 06:00:00 최종수정 2025/07/02 07:24:25

발트3국·우크라등, '대인지뢰금지협약' 탈퇴

"필요시 국경선 따라 지뢰 수백만개 뿌릴것"

유럽 관통 '철의 장막', 80년 만에 러 쪽으로

[도네츠크=AP/뉴시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동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일제히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 탈퇴를 결정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오타와 협약 탈퇴 결정을 공식 선언하면서, 유럽은 러시아와의 접경 지대 전역에 지뢰를 매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7월21일(현지 시간) 러시아 육군 돌격대가 우크라이나 미공개 장소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거점을 점령하는 모습. (사진=러시아 국방부) 2025.07.01.[도네츠크=AP/뉴시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동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일제히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 탈퇴를 결정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오타와 협약 탈퇴 결정을 공식 선언하면서, 유럽은 러시아와의 접경 지대 전역에 지뢰를 매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7월21일(현지 시간) 러시아 육군 돌격대가 우크라이나 미공개 장소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거점을 점령하는 모습. (사진=러시아 국방부) 2025.07.01.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동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일제히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 탈퇴를 결정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오타와 협약 탈퇴 결정을 공식 선언하면서, 유럽은 러시아와의 접경 지대 전역에 지뢰를 매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러시아가 동유럽으로 공세를 확장하고 유럽이 지뢰 매설로 막아서며 대치할 경우, 냉전기 소련과 서방의 경계선인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다시 그어지는 신(新)냉전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일(현지 시간) CNN 등 서방 언론에 종합하면 발트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핀란드, 폴란드 등 유럽 동북부 5개국은 최근 오타와 협약 탈퇴를 결정하고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영국 주도 하에 1997년 체결된 오타와 협약의 정식 명칭은 '대인지뢰의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이다. 세계 164개국이 비준해 준수하고 있고, 미서명국은 미국·러시아·중국 등 주요 강대국과 한국·북한, 인도·파키스탄 정도인데 유럽 주요국들이 잇따라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특히 러시아 및 러시아 핵심 맹방인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나토 6개국 중 5개국이 모두 대인지뢰 사용 제약을 해제하기로 했다. 접경지가 북극해 연안 200㎞에 불과한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국가가 뜻을 모았다.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핀란드 최북단에서 폴란드의 벨라루스 접경 최남단까지 나토와 러시아 측 접경 지대 길이는 3500㎞에 달한다.

이 지역은 면적이 매우 광대한 데다 인구 밀도가 낮고 삼림이 우거진 곳이 많아 유사시 러시아군 침공을 탐지하거나 막아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북·동유럽 각국은 대인지뢰를 이용해 러시아 육군의 진격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선의 모든 나토국은 러시아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한때 상상할 수 없던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며 "필요시 국경선을 따라 고요한 숲에 수백만 개의 지뢰를 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DW는 "나토의 동부 국가들은 지뢰 외에도 울타리와 장벽을 설치하고 현대적 감시·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드론 방어 시스템과 비상시 참호 활용을 위한 관개 시스템을 심화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오타와 협약 미가입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인지뢰를 적극 활용한 점도 고려됐다.

도빌레 샤칼리네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은 "러시아는 작년까지 지뢰를 2600만개 이상 생산했고, 이 중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인을 죽이거나 공격하는 데 쓰였다"며 "(협약 당사국은) 전략적으로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내륙 깊숙히 침투했다가 후퇴할 때 지뢰를 광범위하게 매설해 우크라니아군 반격을 저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영토 17만4000㎢에 지뢰를 묻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오타와 협약을 탈퇴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하면서 "러시아는 협약 당사국이 결코 아니었으며, 대인지뢰를 극도로 냉혹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빈=AP/뉴시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동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일제히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 탈퇴를 결정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오타와 협약 탈퇴 결정을 공식 선언하면서, 유럽은 러시아와의 접경 지대 전역에 지뢰를 매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사진은 알로이스 모크 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왼쪽)과 줄라 호른 헝가리 외무장관이 1989년 6월27일 양국간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을 제거하는 모습. 2025.07.01.

나토가 러시아의 수년 내 북·동유럽 공격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고 사실상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한 가운데, 유럽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신(新) 철의 장막'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냉전기 서방 군사동맹인 나토와 소련 세력권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수천km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경계선은 '철의 장막'으로 불렸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퇴임 직후인 1946년 3월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교 연설에서 "발트해 슈테틴(폴란드 북서부, 독일 접경지)에서 아드리아해 트리에스테(이탈리아 북동부, 슬로베니아 접경지)까지, 철의 장막이 대륙을 가로질러 드리워져 있다"고 말하면서 생겨난 용어다.

처칠 총리 발언은 소련이 유럽 한복판의 독일·체코·오스트리아까지 진출해 장벽을 쳤다는 취지였는데, 종전 이후 약 80년이 지난 2025년 현재는 정반대로 유럽이 냉전기 소련 세력권이었던 발트3국·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형국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핀란드 북부 고지대에서 폴란드 동부까지, '새롭고 폭발력 있는' 철의 장막이 유럽을 가로질러 드리워질 것"이라고 표현했다. 자국 처칠 전 총리의 연설 문구를 그대로 차용했다.

러시아는 탈냉전 이후 나토가 동유럽을 흡수하며 자국 안보를 위협해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 등을 이유로 전면전을 시작했다.

과거 철의 장막의 시대와 비교하면, 중부유럽 국가들은 물론 발트3국까지 나토에 가입하면서 동구권의 러시아 세력권은 벨라루스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이것을 심각한 현상 변경으로 보고 과거 회귀를 시도했다.

그러나 전쟁 발발을 계기로 오히려 북유럽의 핀란드·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는 발트해를 통한 대서양 진출로까지 잃고 사실상 포위됐다.

발트3국·체코·루마니아 등 동유럽 주요국이 결성한 안보협의체 '부쿠레슈티 9개국(B9)'은 핀란드·스웨덴 등 북유럽 주요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공개 지지하며 반(反)러시아 전선을 넓혔다.

북유럽을 확보한 나토는 발트해를 틀어막고 러시아의 대서양 진출 차단에 들어갔다. 미군과 영국군은 5월 발트해 중앙 요충지인 스웨덴 고틀란드섬에서 연합훈련을 했고, 6월에는 핀란드·미국·영국·프랑스 공군이 러시아 인근인 핀란드 영공에서 2주간 공중전 훈련을 벌였다.

미국 안보전문매체 내셔널인터레스트는 "처칠의 연설 당시 소련 영향권이었던 국가 대부분은 오늘날 나토나 유럽연합(EU) 회원국인데, 이들은 러시아 침략에 가장 취약하지만 러시아에 맞서 무장하기로 결심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이들은 크렘린의 제국주의적 계획에 대항하는 궁극적 억지력이 될 '철의 장막'을 만들 수 있다"며 "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원한다면, 이미 자립하고 있는 동맹국들을 미국이 기꺼이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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