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치하늬커 Apr 07. 2020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청소년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온라인 개학 시작! 학교가 그리운 나날들

우리 학교에 저랑 같은 학년 중 저포함 몇 명이 자발적으로 zoom 앱을 통해 공부방을 만들어서 매일 모여서 학습을 하고 있어요. 다짐만 하고 또 안 지킬 거 같아서 시간 약속을 해두면 좋을 거 같아서요! 아침 10시마다 저나 제 친구가 zoom을 시작해놓고 공부하고 있으면 애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방식이고요. 계속 들어와 있는 친구도 있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친구도 있어요.

서로 공부를 하면서 화면을 통해 모르는 문제들을 알려주고 오늘의 학습계획도 서로 공유해요. 애들하고 얘기를 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도 더 재미있고 잘 되는 거 같아요.


물리적 거리두기, 사회적 연결하기

원격 회의 툴인 줌(zoom)을 사용해서 온라인 또래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10대들의 모습이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가을이는 모든 게 새롭다. 놀만큼 놀았고 쉴 만큼 쉬었으니 공부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한 친구와 줌에서 만난 게 시작이었다. 둘만 하다가 다른 친구들도 부르자고 해서 그룹 채팅방에 줌 링크를 공유했고, 그렇게 참여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고1 진도를 미리 나가는 친구들도 있고, 중학교 과정을 복습하는 친구도 있다. 한 친구는 수학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교 과정 수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원칙이 된 세상에서 이들은 서로의 동기부여를 위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신들의 일상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3월이 가고, 4월이 왔다.


온라인으로 접속해 각자 할 일을 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청소년들 (사진: 가을)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청소년

코로나19 인해 교육계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평상시면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의 에너지가 가득할 학교 교정이 조용한 가운데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온라인 강의  수업 형태와 도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만 간다. 교사들의 목소리, 어른들의 우려는 많이 들려오지만, 정작 청소년들에게 2020 3월은 어땠는지 들을  있는 채널은 없었다. 온라인 개학을 이틀 앞두고,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떤 마음일까?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시작한 이 질문들을 유쓰망고가 진행했던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딴짓 파티, 망고포럼) 그룹 채팅방에 올려봤다. 서울, 경기, 대전, 충남, 강원 지역 고등학교 1-3학년, 20명의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이들 중에 학교를 쉬고 있는 친구들은 없었고, 대부분 공립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몇몇은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 안 가니까 좋은 점, 안 좋은 점에 대해 말해준 다양한 생각들은 공통점이 많기도 했고, 이전에 경험한 '학교'의 모습에 따라 체감하는 지점이 다르기도 했다. 최대한 이 친구들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들이 사용한 단어들은 따옴표 안으로 넣어 소개한다.



멈추니 보이는 것들

Top 1. 건강의 회복

학교 개학이 미뤄지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의 좋은 점으로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잠을 잘 수 있다"였다(!). 의외의 대답이었으나, 입시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대답이기도 했다. 게을러져서 늘어지게 잠을 잘 수 있으니 기쁘다기보다는, 그동안 공부하느라 밀렸던 수면을,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어서 '개운해진 느낌'이라는 것이다. 등하교를 하지 않아도 되니 그 시간을 번 셈이고. 이들에게 단 30분, 한 시간이라도 더 잘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학교에선 피곤하면 쉬지도 못하고 (공부를) 계속해야 되는데,
집에서는 피곤하면 조금씩 쉬면서 할 수 있어요.



Top 2. 배움을 숙고할 수 있는 시간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시간이었다. '혼자 공부할 시간', '나만의 페이스대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 그동안 배움에 몰입하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물어볼 때보다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논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간의 확보에 대한 이야기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블록수업 운영, 주제별 융합 수업, 개인 학습 시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진도를 나가고, 새로운 개념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걸 깊이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한 과목에 원하는 시간만큼 자유롭게 집중하니까 1시간이 지나도 흐름이 끊기지
않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루 목표를 달성하면 뿌듯하고요.



Top 3.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

아마 10대들이 기억하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아봤을 때, 2020년 3월은 학교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 누리는 생애 첫 자유이지 않았을까. 마음껏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시간에 대한 자유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핸드폰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를 시작으로, '급식을 안 먹어도 된다'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에도 자유가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을 사는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학교에 안 가니까 오늘 뭘 할지 생각하면서 지내게 돼서
학교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먼저 하는 게 가장 큰 장점.
학교는 수업이 항상 정해져 있지만 집에서는 정해진 수업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과목 공부를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공부와 휴식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
진짜 자유로운 곳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서 행복합니다!



친구들의 답변은 이 세 가지 큰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밤새 게임만 한다거나, 넷플릭스만 본다거나, 인터넷 서핑만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쉬고, 적당히 삶을 돌보며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상위 1%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등학생쯤 되면 자신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일까. 건강과 시간과 자유에 대한 주도권을 경험한 학생들의 증언들이 모아져, 코로나19가 지난 학교의 풍경에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


개학이 미뤄지면서 학교에 안 가도 되니 좋은 점이 훨씬 많을 줄 알았는데, 안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다음은 학교가 그리운 점.


학생들의 주체적 성장을 위한 장소로서의 학교 상상하기 (이미지 출처: www.whittleschool.org/en/architecture)




그래도 학교가 좋아

Top 1. 친구들

당연히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거였다. 깨알 같은 예시에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이들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이 답변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전한다. 이들의 애틋함을 느껴보시길!


학교에서 야자 쉬는 시간에 찬 공기 맞으며 애들이랑 운동장 산책 못하는 게 그립다.

오늘 같은 만우절 날에 1학년이랑 반을 바꿔서 선생님들 개인기 못 보는 게 아쉽다. 1년에 딱 한 번인데..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랑 깔깔대면서 놀았던 게 그립다.

체육 끝나고 들어갈 때 바람 불었는데 그게 웃기다고 친구랑 장난쳤던 게 그립다.

친구랑 엄마 몰래 야자 째고 XX여대에서 놀다가 버스 탈 시간 맞춰서 들어올 때 너무 일찍 와서 친구랑 XX대학교 운동장 도는데 반짝반짝 빛나던 별을 보면서 환호했던 게 그립다.

친구들이랑 반 뒤에 있는 컴퓨터로 드라마 보면서 설레발치던 게 그립다.

점심시간마다 친구들이랑 떠들면서 급식을 먹은 게 가장 그립다. 일하는 가족들 때문에 집에서는 주로 혼자 먹게 되는데 그게 가장 적응이 안된다.

그냥 친구들이랑 사소한 걸로 웃던 모든 일들이 다 그립다.


이 정도 되면, 사실 학교가 그립다기보다는 학교에 두고 온 친구가 그립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수많은 예시의 결론은 '친구들이랑 하면 뭐든지 재밌다'였고, 끝내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했을 때가 훨씬 행복했던 것 같다'는 고백이 나왔다. 한 친구의 고백에 이어 '맞아 맞아'를 연신 외치는 이들의 대화를 보며 오프라인 공간에 함께 모여 서로 역동을 내며 성장하는 배움의 공동체는 존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Top 2.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렇다면 이들이 그리워하는 배움의 공동체는 물리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학교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은 기존의 전형적인 사각형 교실만 길게 나열돼 있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학교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요.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랑 언제든 쓸 수 있는 공간과 프린터기 등등.
집은 휴식하는 공간이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용도가 달라져버려서 불편해요.
제가 다닌 중학교는 다양한 목적의 공간들이 있어서 그곳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친구들과 모임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공간 자체를 갈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집콕 중인 우리 모두의 모습 (이미지 출처: @Mael_Biskotz on Twitter)


사람은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어떤 목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에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생각도, 행동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침대가 있고, 주로 휴식을 취하던 내 방에서는 계획한 일들이 잘 될 리가 없다. '의욕이 없다'. 더군다나 내 방 없이 동생과 함께 쓰거나 컴퓨터가 다른 방에 있다면 온라인 수업은커녕 사생활도 지킬 수 없게 된다.



Top 3. 배움을 이끄는 코칭

개학이 연기되는 동안 자유가 주어졌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생겼다. 항상 누군가가 정해준 분량에 따라 학습 계획을 채워 갔는데 이제는 혼자 하다 보니 '더 많은 의지가 필요'해 진 것이다. 더 답답한 것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왜 배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수시러는 생기부를 작성을 위해 철저한 계획과 실행이 필요한데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지금은 최소한으로 준비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학교도 가지 않는 상황에서 대체 뭘 공부해야 될지 몰라
방황하는 중이에요.
아무래도 저는 사교육을 받지 않다 보니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기회에 사교육을 통해 완전히 등급을 나눠버리겠다!
(사교육 잘 받으면 완전 1등급 기회다!)'라는 식이라 혼란스러워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누군지, 수업은 어떤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시험을 쳐야 하니 너무 힘들어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도 공존했다. 배워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닌, 배움에 대한 코치를 하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다. 새 학년을 맞아 나의 한 해를 책임져 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선생님의 성향, 가르치는 스타일, 나랑 잘 맞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인강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르는 문제가 생겼을 때나 의문점이 들 때
선생님한테 이야기하거나 질문할 수 없어서 아쉬워요.







4월 9일 온라인 개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우선 시행하는 학년은 중3, 고3 학생들이다. 이유는? 당장 고입, 대입 입시를 눈 앞에 둔 학년들이기 때문에. 자유학년제를 경험한 중학생들은 졸업하고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인데 학교에서 보내오는 과제와 지침에 혼란이 크다.


학교에서 EBS 동영상을 보고 감상문 같은 걸 쓰라고 숙제를 내줬는데,
학교에서 보라고 한 동영상이 완전 '입시'를 위한 영상이라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EBS에 입시 채널도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고, 이제 정말 '공부해라'의 시작이구나 싶더라고요. 영상에서도 '대학 잘 간 학생들=성공한 선배들'이었어요.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은 공교육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교육 경험을 최초로 하게 되는 세대가 됐다. 이들에게 학교가 자신을 발견하고 배움의 기쁨이 넘쳐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강행되는 온라인 개학이지만, 온라인이 개개인의 관심을 발견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강한 학습공간이 되길 바란다. 화면을 넘어 맺어질 관계, 학교와 배움의 형태는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청소년들이 원하는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그래도 학교가 더 좋으려면 말이다.



유쓰망고는 모든 청소년이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디든 배움터가 되는 교육 생태계를 조성하는 교육 혁신 비영리단체입니다. “청소년들이여, ‘망’설이지 말고, ‘Go’!”의 줄임말인 유쓰망고는 행동하는 청소년들과 지지하는 어른들과 함께 합니다. 유쓰망고 소식을 받아보고 싶다면, 망고레터를 구독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