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정부가 자국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전면 봉쇄하고 나섰다. 엔비디아에 이어 AMD와 인텔의 AI 칩에 대해서도 미 정부가 통제에 나선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미 하원 산하 ‘미중 전략 경쟁 특별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 딥시크는 미국 기술을 훔쳐 만들었다”며 엔비디아의 아시아 판매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밀수·유령회사 등 중국의 ‘AI 칩 우회로’까지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최첨단 AI 칩과 장비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면서도 중국 전용 저사양 제품은 허용하는 식으로 자국 기업 피해는 최소화했다. 이번에 약 10조원의 자국 기업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면 통제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 여파로 엔비디아·AMD 주가는 16일 6~7%가량 급락했다.
미국의 의도가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7일 중국을 찾아 “중국과 계속 협력하고 싶다”며 “(미국) 규제 요구에 맞도록 제품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흔들림 없이 중국 시장에 서비스할 것”이라고 했다.
◇中 압박하려 ‘저사양 AI칩’도 수출 통제… 美, 자국 기업 10조원 손실 감수
미국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관련 규제를 꾸준히 강화해 왔다. 중국의 반도체·인공지능(AI) 굴기(崛起·우뚝 일어섬)가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번에 제재 강도를 한껏 끌어올린 것은 AI 칩을 앞세워 ‘보복 관세’로 맞서는 중국 정부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서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지난해 중국 매출이 20조원을 넘는다는 것은 중국에 엔비디아 AI 칩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방증”이라며 “이번 제재로 중국 정부와 테크 기업들이 받을 압박도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의도가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반도체·AI에서 기술 자립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게 근거다.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된 엔비디아 H20, AMD의 MI308은 자사 주력 제품과 비교할 때 성능이 20% 수준이다. 중국은 이 같은 저성능 AI 칩만으로 ‘딥시크’ 등을 만들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는 16일 보고서에서 “딥시크는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딥시크를 통해 중국으로 데이터가 유출되고 있다”며 “딥시크는 중국 수출이 금지된 미국 반도체 칩과 기술을 훔쳐 만든 것”이라고 했다. 딥시크의 기술적 위협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규제로 중국 반도체 역량이 오히려 향상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바이트댄스나 텐센트 같은 기업은 이제 엔비디아의 ‘H20’ 대신 화웨이 제품을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딥시크·알리바바 등 주요 중국 AI 기업들은 화웨이가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가 생산한 AI 칩 ‘어센드910’ 시리즈를 사용한다.
이런 가운데 17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중국 당국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찾았다. 황 CEO는 “중국은 엔비디아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계속 중국과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중국 중앙TV(CCTV)가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황 CEO가 이번 규제의 여파를 논의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기술 분야 리더들을 만난다”고 보도했다.